氣位

경계해야할 무술인의 마음과 행동

윤대현 2006. 10. 4. 12:24
 무술인은 항상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노인이 되면 누군가가 해 주겠지 하는 마음을 애초부터 갖지 않는 것이다.


  사범에서 관장으로 옮겨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관장이 사범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관장이 사범을 부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학원이 끝인 사회교육과는 달리 생애교육이라고 하는 무도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때문에 무술은 젊었을 때 한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초심의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고 도를 닦듯이 자신의 기량을 끝없이 쌓아가는 것이다.


  우유뚜껑도 따지 못하던 스승이 아끼던 제자를 불러 시범을 보이는데 그 제자는 그동안 당했던 그 어떤 때보다 더 강력해진 공력에 놀라며 한 기술 한 기술에 몸은 종이 장처럼 날아가고 뭉개지기를 20분, 다음날 잠자리에서 조용히 숨진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가면 약해지는 인간의 기운과는 반대로 훈련으로 쌓여진 공력은 나이와는 관련 없이 끝없이 높아진다는 것을, 끝까지 일깨워주시려는 스승의 배려에 감사함을 잃지 않고 그 자신도 스승처럼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의 공력을 쌓아가며 제자에게 모범을 보이려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나이 많은 관장이 나서는 것을 추잡스럽게 생각하는 우리의 무술풍조에서는 도저히 생각 할 수 없는 일이다. 양복입고 젊잖은 표정으로 학생들 비위 맞추는 것이 더 고상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력과는 상관이 없고 고수는 인격이 훌륭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사람은 노화가 진행되면 심리적으로 대접받는 것에 민감해 진다. 때문에 한 조직에 일생을 함께 하질 못하고 또 다른 조직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 무술은 30대에 환갑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40대는 70대와 같고, 50대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 나이에 무엇을 배우겠는가!” 라며 자신의 기술에 완성도를 높여줄 선생을 피한다. 그의 나이는 40대였지만 이미 젊음을 잃어버린 70대와 같았다. 그에겐 새로운 스승을 모시기란 불가능 하다. 그러한 자들이 만드는 조직이나 단체는 대접받기 위한 것 외에는 없다. 


나이는 지위나 그 어떤 자격도 아니다. 원로라는 것을 일종의 자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떠한 말이나, 변명, 행동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어린아이의 응석과 같다. 노인은 어떤 행동을 해도 된다는 뻔뻔함을 가진 이들도 있다.


먼 훗날 자신을 따르는 제자를 생각한다면 자신부터 철저히 젊음을 유지하여야 한다. 진정한 젊음이란 육체적 연령에 관계없이 베푸는 사람이며, 누군가가 베풀어 주기만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하여도 노인인 것이다. 무도에서 베푼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