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와라 선생 강습회 후기
2006년11월 11일부터 10일동안 열린 스가와라 선생 강습회 동안에 일어난 일들은 한마듸로 정말 감동이었다. 스가와라 선생을 뵌지가 2년전이었는데 일본에서 뵈었을때는 그냥 검술을 뛰어나게 잘 하시는 분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 분에게 검술을 배우면 최고의 검술을 읽힐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겉을 보고 접근했다가 알맹이를 보고 더 놀라는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처음 이가라시 선생으로부터 소개를 받았을때 그냥 이가라시 선생이 직접 가르쳐주면 될 것을 왜 소개해 주는지 이해를 못했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지만 대충넘어가려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로는 도통 이해가 어려운게 그들이다. 테크닉에서 보여진 것 처럼 정밀하고 섬세하고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 인생은 한번뿐이듯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검술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말인지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옛날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은 인도의 영향을 받았듯이 일본은 우리의 문화와 연결된 것이 많다. 일본 검술을 보면서 우리도 옛날 우리의 검술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치만 그것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데 합의해 버린다. 그리고는 일본 침략때 없어졌느니 어쩌니 하는 것으로 그 이유를 둘러 대 버리는 것이 전부이다.
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며 한나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옛날 강한 칼을 만드는 것은 지금 최첨단 무기를 만들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칼은 한나라의 흥망성쇄와 같이 했다. 그런데 칼을 천시하는 풍조가 우리사회에 정착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한 성리학이 한국에서 더 발전했던 것 처럼 만주대륙을 호령하던 제국주의적인 우리민족의 기상은 오히려 2차대전까지 일본이 그 자리를 찾이하게 된 것이다.
나의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대륙을 향한 외침이 있었고 세계를 향한 웅대한 꿈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런 역사속에서 우리의 전통이 있었고 그 전통은 일본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결국 일본 최초의 검술은 한국의 고대 검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최초의 검술을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것은 정확했고 우리는 스가와라 선생으로부터 일본 최초의 검술을 보면서 옛날 우리 선조의 뛰어난 검술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어 본다. 얼마나 감사한가.
함께해준 회원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