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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타치로 교검지애를...

윤대현 2007. 1. 18. 18:08
   어제는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식이 잘 된 것처럼 아비가 기분이 좋은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큰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생명공학부? 나는 전문지식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내가하고 있는 일 보다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 무술이라는 것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적을 죽여야 하는 기술은 처참할 만큼 무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가오는 적을 바라보는 눈은 비장한 각오로 번뜩이고 더욱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든 칼은 시퍼런 광채를 띄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술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살자고 휘두르는 칼에 무슨 정신이 있고 철학이 있겠습니까?


  일본의 역사에서 에도시대 이전에 무술이라는 것이 이랬습니다.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종교적인 선이 접목되면서 칼에 정신이 스며들고 칼을 다루는 무사들의 철학이 정립이 되면서 칼은 정신이 살아있는 검으로서 다시 그 의미가 높아 졌습니다. 무술이 무도로 바뀌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담고는 있지만 인간성 향상의 하나의 이정표일 뿐 종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술이 종교라고 한다면 이단종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딘가에 영혼을 빼앗기는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만 무도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이 그러하듯이 무사들 또한 선을 향한 닦음입니다. 티끌이 없는 다이아몬드처럼 노함(화냄)이 없는 깨끗한 선을 추구하는 것이고, 단단한 쇠에 녹이 생기지 않도록 게으름을 막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도가 추구하는 기본 방향이고 더 나아가 세상(타인)을 이롭게 하고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자제시키는 가장 좋은 운동은 구미타치와 합기도(Aikido)라는 연구 발표가 있었습니다. 구미타치라는 것은 약속대련과 같은 것으로서 검을 가지고 둘이서 대련을 하듯 약속된 형을 하는 것입니다. 죽도를 가지고하는 검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상대와 함께 어우러져 호신술을 연습하는 합기도(Aikido)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중에 검술과 장술은 모두 정해진 형태를 취하는 구미타치로 진행합니다.


  현재 사단법인 대한합기도회 본부도장과 소속 지부도장에서는 수준 높은 구미타치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구미타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 무술이 이기(승리하)는데 전력하는 것은 옛날 사무라이들이 살기위해 죽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배려라든가 구미타치식 형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은(자비나 사랑을 하는 것은) 대서롭지 않은 적을 앞에 두고 사치를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이는 무술이 무도로 변한 것은 짐승 같은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드러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루의 삶이 바쁜 현대인에게 무술의 달인이나 명인이 될 수 있는 길은 희박합니다. 옛날 무사들처럼 하루 종일 무술만 하던 때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일본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불가능한 삶입니다.) 하지만 구미타치라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미타치는 적을 죽이기 위한 훈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져주는 방법을 통해서 살리고자 합니다. 완벽한 구미타치는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달인의 경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생의 기술을 하나씩 배워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선생과 똑같은 실력을 가지게 됩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빠르게 숙달 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구미타치입니다. 구미타치를 가르치는 것은 제자에 대한 선생의 사랑 표현입니다. 즉 자신과 같은 실력으로 끌어 올려서 다치지 않고 혹은 죽지 않게 터득 시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달인의 경지로 가장 빠르게 인도할 수 있는 길은 바로 구미타치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훌륭한 구미타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 선생이 없이는 절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술에서는 달인이 될 수 없더라도 구미타치에서는 달인이 될 수 있습니다.   태권도 우승자가 유도에서도 우승하고 검도에서도 우승한다면 무술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달인이 되기는 결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사람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명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공분야를 선택한 대학에서 수준 있는 선생을 가까이 하고 그 가르침에 충실하며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구미타치 처럼 완벽한 노력을 경주할 때에 비로서 한 분야의 명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