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멀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이가라시 선생의 강습회에 이어서 어제는 롤란 톰슨 선생과 함께 수련을 하였습니다. 롤란 선생은 동경에 양신관 로폰카이 도장장(관장)으로 호주인입니다. 언젠가는 일본에 도장을 만들겠다는 나의 계획을 호주인이 실행한 것입니다. 슬로바키아 협회의 쿠릴라 선생을 만났을 때 일본을 2시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일본은 멀지 않습니다.
미국! 무척 멉니다. 열 시간 이상을 비행기에서 꼼짝 못하고 가야합니다. 슬로바키아는 근 20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누군가 인천에서 서울에 오는 것도 멀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자에게 있어서 거리가 멀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 합니다.
먼 길을 마다않는 정성을 보이는 이에게는 이쪽에서 갈 것입니다. 일본에서 선생이 오고 있지만 그것은 선생에게 다가가는 우리의 정성이 있기 때문이지 결코 먼 거리에 있는 선생에게 갈 수 없기 때문에 선생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두어 번 인사차 오는 것과는 다릅니다.
금년에는 제주도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서 4번의 제주도 출장 계획이 잡혀있습니다. 제주도에 기술적 수준이 떨어져서 가르쳐 주기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벌써 몇 년째 서울을 오고가며 배운 지도원들이 전국 어느 곳 보다 많아졌습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지도자들이라서 기술적인 감각은 일본에 있는 왠만한 도장에 보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높아졌습니다.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는 제주도를 내가 자주 가는 이유는 서울을 멀다 않고 내 도장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족과 같은 정을 느끼기 때문에 나 또한 제주도가 멀다고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가라시 선생이 서울에 오는 것도 고바야시 선생이 서울에 오는 것도 똑같은 것입니다.
기술만을 바라보고 오는 자는 언젠가 자기 수준에 만족할 만큼 기술을 배웠다고 생각하면 떠날 것이고, 조직과 능력을 바라보고 오는 자라면 언젠가는 그것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참 식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요즘 새로운 식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걔중에는 기술만 배워서 가르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생과 함께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수련생들에게 자기 선생을 소개하고 함께 수련하며 깊은 유대감을 가지는 것은 도장의 뿌리와 전통을 확고히 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