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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26일 부터 3월 6일까지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네팔 카트만두 레인저를 위한 강습회에 잘 다녀왔습니다.
TV로 보는 네팔과 직접 경험한 네팔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여행이 중요한 것 같다. 처음 계획은 고바야시 야수오 8단 선생을 모시고 닛폰칸 설립자인 홈마가쿠 선생과 함께 갈 계획이었으나 연로하신 고바야시 선생의 건강문제로 인해서 저와 홈마 선생만 가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터키를 다녀오면서 그 나라의 교통체계와 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문제는 있기 마련인데 이번 처음 방문한 네팔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혼돈스러웠습니다. 홈마 선생과 함께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자 레인저부대 관계자와 카트만두 아이키도협회 관계자의 꽃다발과 머플러를 목에 걸쳐주는 환영을 받았습니다. 공항은 시골동네에 비행기장 같았는데 한국의 속초나 여수 비행기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초라해 보였습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도착해서 보니 공항청사가 1층으로 눈앞에 보여서 몇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되는 곳이었지만 버스를 타게 하더니 연병장을 돌듯 크게 원을 그리며 청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룰이라고 했습니다.-그런 룰은 밖에서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호텔로 가는 도중에는 완전하다고 보이는 도로는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골목을 달리는 차는 비포장도로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고 앞에서 달려오는 차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곡예를 하듯 운전을 했는데 교통법규가 없는 듯 했습니다.
전기와 수돗물 사정이 어려워서 호텔도 시간제로 수도와 전기를 쓸 수 있었는데 밤에는 거의 촛불로 룸을 밝혀야 했습니다. 새벽에 물을 받기위해 물차를 기다리는 아낙네들을 보면서 물과 전기를 마음대로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7시부터 레인저 부대의 훈련이 있었습니다. 도착해서 첫날밤은 꼬박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6,25 사변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차창 밖으로 보였던 그들의 어려운 살림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을 겨우 청했는데 홈마 선생이 방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랍니다.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는 군요. 잠깐 눈을 붙였던 나는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생각하며 샤워를 하고 미리 준비해간 군복과 군화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밖에는 인기척이 없는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선세이 이마 난지 데스까?” 지금 몇 시냐고 물어 보았다, 선생은 7시30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훈련하러갈 준비를 했던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실수를 곧 알아차렸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덴버 시간을 잘 못 알았습니다, 고메나 사이~’
새벽 부대앞에 도착한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두열로 길게늘어서 있었다. 부대장이 우리의 이마에 곤지를 찍고 부대원들의 꽃다발 환영을 받으며 준비된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레인저 부대 수련은 연병장 잔디밭에서 500명의 인원을 반으로 나눠서 홈마 선생과 내가 3일 동안 지도를 하였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 평화의 무술, 사랑의 무술이라고 선전해 왔던 아이키도를 살상을 위주로 하는 군대무술에서 어떻게 매치를 시켜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아이키도 기술 그 자체가 자신을 보호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 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키도는 후진국에서 배우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배우는 것이 가라데나 태권도에 비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 그 밖에 선진국에는 이미 보급이 완료되어 그 나라 자체의 힘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와 네팔 같은 후진국에는 아이키도를 받아 들일만한 여건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복하나 마련하기 어렵고, 선생을 초빙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해외에 나갈 경비를 준비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네팔 아이키도는 1년 전 홈마가쿠 선생의 가르침과 지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1년 동안 닦은 실력으로 레인저 부대에서 공식무술로 지정하여 모든 부대원들이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에서 보는 것은 그동안 닦은 실력을 우리 앞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아이키도 기술을 권총은 물론 M16소총에도 적용 시키고 있었는데 아이키도가 군대무술로도 잘 맞는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오타쿠는 어느 나라든 있기 마련입니다. 부대원 한명은 하루에 6시간씩 훈련하고 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역하고 나면 자신의 마을에 아이키도 도장을 오픈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도 축하의 화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500명의 부대원과 자이카 부대의 헌병들이 지금 아이키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네팔 아이키도를 성장 시켜나갈 재원들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자막수정:2009년 2월 27일 입니다) 부대한편에는 도장 건물을 이미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매트를 살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비가 오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수련을 합니다. 그것을 본 가쿠홈마 선생은 즉석에서 매트 값으로 삼천 달러를 부대에 기증해 주었습니다. 네팔에 아이키도는 그렇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전에 레인저 부대와 오후에는 일본무도연맹에서 지어준 시립도장에서 자이카 부대 헌병들을 대상으로 3일 동안 아이키도를 지도 했습니다. 나의 지도는 그들에게 초콜릿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기본기에 충실한 응용기를 가르치고 이었고 나는 변화기에 집중했는데 모두들 좋아 했습니다. 한국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네팔 관계자들은 빠른 시일 내 다시 꼭 와달라는 부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 옆자리로 김정일 뺏지를 단 북한 사람들이 와서 앉았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북한 경제도 네팔 경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들의 식탁에 올려진 갑비싼 화려한 메뉴를 보고 왠지 다른 나라 사람들 같았습니다. 네팔엔 북한 대사관도 없다고 하는데 공관원 같은 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외를 나갈 때 즐거움이 있는 것은 훈련 다음에 오는 관광이 그것입니다. 시내 명소를 관광하면서 그들의 어려움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 네팔은 세계에서 몇 없는 최고의 관광지입니다. 히말라야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에베레스트 산이 마치 구름위에 앉아있는 신처럼 그 웅장함을 뽐내고 있는 곳입니다. 세계에서 관광객과 히말라야 트레킹 족이 넘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 불교의 발상지이며 석가모니의 탄생지입니다.
한국에 남산과는 비교가 안 되고 사원은 경복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2600년 전 최고의 정신적 철학과 문화를 가졌던 민족이 왜 오늘날과 같이 피폐해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나름대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네팔 왕이 인도로 쫓겨났는데 부정부패로 인한 국민의 실망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제를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군요. 결국 정치는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정치가 문제인 것 같았고 그렇게 많은 관광 수입이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는지 궁금했는데 행정관리들의 부정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누군가는 종교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돋보이고자 하는 말일 뿐입니다.
석가모니의 탄생지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가 80프로이고 나머지는 불교, 이슬람, 가톨릭이었다. 일주일동안 네팔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그들의 마음속에 신이 있어서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힌두교는 신이 많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 같다. 길거리의 소도 신이고 길거리 땅에도 신이 있고 앞뒤 좌우 사방 모두 신이 널려있는 것 같았다. 신이 너무 많아 못산다고 하기에는 일본에도 신이 많지만 잘 살지 않는가? 아무튼 불교는 힌두교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들었는데 처음 알게 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불교에도 신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나 네팔인 들은 힌두교의 수많은 신중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이룬 신에 불과할 뿐이었다.
3일 동안의 훈련을 끝내고 가라데 국제심판이라고 하는 네팔인의 안내로 포카라로 이동했다. 네팔은 산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비행기로 40분간 간 포카라가 자동차로 가려면 하루로는 불가능 한 곳이다.
포카라는 여행객들이 많았는데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물이 호수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가라데 도장을 가기위해 택시로 2시간동안 산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이 윙이라고 하는 마을이었다. 이전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네팔은 산으로 이뤄진 마을이 많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는데 가라데 도장을 직접 지었다고 하는 곳을 가 봤는데 그 곳도 산 정상이었다.
포카라에서 새벽운동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 가라데, 우슈 등 많은 무술과 구기 종목을 아침운동으로 모여서 하고 있었다. 한 40명 정도가 수련하고 있는 가라데 회원들에게 소개가 되고 그들이 시범을 보였다. 그리곤 나에게 그들을 위해 인사말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모든 무술은 다 똑같다고 했습니다. ‘생각 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나는 움직인다, 고로 살아있다’ 이것이 무술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빠르게 움직이는 활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도란? 활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석세스! 이것이 무도가 추구하는 기본 취지가 아니겠습니까! 모두 박수를 쳤는데 특히 영국인 수련자는 나의 생각이 너무 좋았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 삶에 지친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런 사람에게는 활력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은 무언가 목표를 정해 놓고, 예를 들자면 상대를 적으로 하고 적을 이기기 위해 경쟁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많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목적은 단순합니다. 이겨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활기(活氣)를 가지게 하고 자신의 삶속에 영향을 미치고 생명력인 활력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후진국일수록 스포츠는 그 힘을 갖습니다. 2차 대전 후 일본이 활력을 찾는데 역도산의 역할이 컸고 가라테의 세계적 확산이 일본인들의 가슴을 벅찬 감동으로 기운을 몰고 왔습니다. 지금 우리의 태권도가 올림픽에 힘입어 세계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힘을 끝까지 유지하려면 태권도인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포카라에서 분발하고 있는 가라테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그 힘이 언젠가는 네팔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네팔의 발전에 우리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힌두 사원들이 많았는데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이 된 인류유산인 곳이 많았습니다. 조그마한 강가에서는 힌두교의 전통에 따라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장작과 함께 타고 있는 시신 곁에서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화장터에서 보는 울고불고 시끌벅적한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가 되면 사원에서 조용히 앉아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죽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인공호흡을 시키고 안 죽으려고 링거 주사를 꽂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된 모습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판단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품위 있는 모습에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이번 네팔 행사는 아이키도 이전에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풍요 속에서 빈곤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과 빈곤 속에서도 행복지수가 높은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저를 초청해준 홈마 가쿠 선생과 따뜻한 환영을 해준 네팔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 또한 신의 존재에 대한 또 다른 감동을 맛보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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