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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해도에서 있었던 일과 데고이라는 것
    합기도 바로알기 2007. 11. 1. 19:07
     북해도에서 있었던 일과 데고이라는 것  

    비하인드 스토리


    일본 북해도 온가루라는 시골에 호리카와 고도(지금은 고인이된 대동류 선생) 선생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히사다 여관에 다케다 소가꾸 선생이 찾아왔을 때 그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던 호리카와 야스무네(고도의 아버지)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여관 한쪽에 다다미 18개를 깐 수련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2년 동안 대동류를 지도했습니다. 그때 북해도 개발단장으로 온가루에서 멀리 떨어진 시라타기라는 곳에서 살고 있던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신문기자인 요시다 고타로(나중에 극진공수도 최영의 총재에게 대동류를 가르친 선생)의 추천으로 다케다 소가꾸 선생을 만나서 시라타기에서 온가루까지 통학을 하며 배웠다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동류 육방회의 종가인 오카모도 세이고 선생의 스승인 호리카와 고도도 이때 수련했으며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 한쪽에 마련한 수련장이었습니다. 여관주인인 호리카와 고도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사가와 선생(기무라 선생의 스승임) 아버지(사가와 네노끼치)와 친구이며 사가와 선생은 이때가 10살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다케다 소가꾸 선생의 합기를 경험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가 大正4년 2월 달이었습니다.


    다께다 소가꾸 선생은 한국 합기도측에서 사망장소로 얘기한것과 다르게 북해도에서 숨진 것이 아니고 바다건너 아오모리라는 곳에서 사망했습니다. 또한 그가 숨을 거둘 당시 그의 아들인 “다케다 도끼무네”와 제자인 “야마모토 가꾸요시”가 함께 있었고 그 당시 도끼무네는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북해도를 떠나며 선물로 드린 시라타기에 집에서 살고 있다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다건너 아오모리에 와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다케다소가꾸 선생이 숨을 거둘 때 옆에 최용술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다케다 소가꾸 선생의 양자로 있었다는 말도 모두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옛 일본에 데고이라고 있는데 데고이라는 말은 8세기(750년) 정도에 일본서기인 古事記에 나오는 말로서 신사 앞에서 일정한 때가되면 하는 행사에서 데고이를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지금의 스모(일본씨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신사앞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행사가 스모이고 그 옛 형태가 데고이라고 합니다. 한국합기도 측에서는 다케다소가꾸 선생이 숨을 거두며 “데고이는 너희나라 것이니 가지고 가거라”라고 했다는 말은 근거가 없는것이며 그 이유중에 하나는 대동류를 다케다 소가꾸 생전에 데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600년경인 에도시대에 와서는 데고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야와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揚心流(이후에 파가 많이 파생되고 현대유도가 여기서 나온것임), 竹內流, 起倒流등 여러유파를 일컬어 야와라라고 했지만 일본 전쟁사 이후에 등장한 대동류를 ‘데고이’나 혹은 ‘야와라’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데고이’는 대동류 유술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므로 합기도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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