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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삼랑원의광(1045~1127)
    합기도 바로알기 2006. 8. 24. 14:31
    新羅三郞源義光(1045~1127)

    ‘신라삼랑원의광’ 일본명 ‘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 이라는 이름은 합기도의 원류로 자주 들먹이는 이름입니다. ‘미나모토’가는 일본에서 처음 막부시대를 열었던 가문이기 때문에 많은 일본사람들이 최근까지도 자신의 혈통을 미나모토가에 결부시키기 위한 조작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혈통을 미나모토라고 했다가 가짜로 밝혀진 예입니다.

    다케다 소가꾸 선생도 혈통을 미나모토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근거가 없다고 부정하는 일본인들도 있습니다. 합기도 기원을 말하면서 ‘일본의 도미키 교수설에 의하면... 천화천왕으로부터 미나모토가에 신라삼랑원의광이 그 시조로 그 혈통을 이어받은 다케다 소가꾸 선생이 대동류합기유술를 만들었다라고 설명하고 다케다 소가꾸에게서 배운 우에시바가 합기도를 창시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라삼랑원의광’으로부터 시작인데 원의광(미나모토 요시미츠)이라는 이름앞에 붙은 ‘신라삼랑’에 대해서 신라는 ‘신라사람’이었고 ‘삼랑’은 신라화랑들의 ‘계급’이라고 설명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미나모토가에서 요시미츠 즉 원의광을 신라에서부터 데리고 온 '양자’라고 하는 설이 나오게 된것도 바로 이름앞에 붙어있는 '신라삼랑'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합기도는 고대 신라시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신라삼랑원의광’은 미나모토가에 셋째아들로서 신라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름앞에 ‘신라삼랑’을 썼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고대 막부시대에 일본에서는 어느 한 지역을 다스릴 때 ‘신사’를 중심으로 군대를 조성했기 때문에 신사는 자체적인 학교나 군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메이지신궁과 같이 커다란 조직을 거느린 신사에는 각종 무술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부시대 무사들의 세력싸움은 바로 신사와 또 다른 신사와의 싸움이었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라는 신사의 이름을 처음부터 밝히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지역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삼랑원의광 앞에 ‘신라’라는 이름은 ‘신라’라는 신사의 이름을 붙힌 것입니다.


    원의광(미나모토 요시미츠)의 형제들이 이름앞에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형은 즉 장남의 이름은 ‘八幡太郞源義家’ (하치만타로우 미나모토 요시이에) 이고

    둘째형은 ‘賀茂次郎源義綱’(가모노지로 미나모토요시투나) 이었고 바로 셋째가 新羅三郞源義光(신라사부로 미나모토 요시미츠) 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첫째형은 ‘八幡’ (하치만)이라는 신사의 이름이 붙혀졌고 둘째형은 ‘賀茂’ (가모)라는 신사의 이름이 붙혀져 있습니다. 현재 가모신사는 세계유산으로 유네스코에 기록이 되어있는 유명한 곳입니다.

     

    지금의 일본에 신사는 종교적 의미가 있지만 옛날에는 한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적인 존재로서의 의미가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사다음에 붙어있는 ‘삼랑’은 셋째를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서 일부에서 신라화랑의 계급이라고 하는 말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미나모토가의 첫째아들은 태랑(太郞 타로우) 둘째아들에게는 차랑(次郞 지로) 그리고 셋째아들에게는 삼랑(三郞 사부로) 라고 붙혀서 순서를 표기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장남에게는 '하치만'이라는 신사와 관련이 있고, 둘째는 '가모'라는 신사, 그리고 셋째는 '신라'라는 신사와 관련이 있는데서 붙혀진 이름입니다. 형제들의 성인식이 모두 각기다른 신사앞에서 거행됐던 것입니다.

    앞에서 '도미키 교수설’이라고 하는 부분은 일본에서 발행된‘스포츠코스 합기도교실’이라는 책자 232페이지 대동류의 유래와 현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대동류라는 명칭이 신라삼랑원의광이 어린시절 대동의 관에 거주하면서 ‘대동의 삼랑’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3줄로 적혀있는 글을 지칭하면서 나온 말로서 신라삼랑원의광이 신라사람이었다는 말은 어디에도 나온바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신라삼랑 원의광의 아버지는 미나모토 요리요시(賴義 988~1075)이고 위에 할아버지는 미나모토 요리노부(賴信)입니다. 직책은 무츠노가미 진주부(陸*守鎭守府)에 쇼군(장군)이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무츠지역에서 (지금의 동북지역)에서 아베-(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 군대가 강했고 말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곳임 독립적인 나라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음 엄밀히 말하면 미나모도가에서 침략을 한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음)-라는 호족과 싸우기 위해 출정을 하면서 교토와 가까이 있는 시가현(慈賀縣)에 위치한 원성사(園城寺) 안에 있는 '신라대명신'을 모신 신사 앞에서 승리를 위한 기원을 하면서 만약 기원을 들어준다면 은혜를 갚는 보답으로 자신의 아들을 신사로 보내겠다는 약속을 신관들앞에서 함으로해서 -(신사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와 자금을 빌리기 위함)- 그당시 신사에 군사와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신라삼랑원의광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 즉 원의광을 신라신사에 보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미나모토 요리요시의 세째아들인 미나모토 요시미츠(源義光)가 신라신사에서 성장하였고 (학문을 배웠는데 군사적인것을 포함) 성인식도 신라신사에서 하게 되는 배경이 된것입니다.

    신라삼랑원의광은 생이라고 하는 피리와 같은 악기를 잘 다뤘는데 그는 전쟁에 나갈때마다 죽을 각오를 하였기 때문에 그 악기를 다루는 중요한 테크닉을 도요하라 도키야키라는 무사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투에 출정을 할때면 따라나서는 도키야키에게 너는 죽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전투에 참가할 수 없도록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글을 공개하는 목적은 그동안 신라삼랑원의광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교수들까지 짜마추듯 각색을 하는 글들이 많이 나돌고 있기에 좀더 정확하고 근거있는 연구를 하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공개하는 것임.

    -사단법인 대한합기도회 자료실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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