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다케다 소가꾸 검술에 더 관심을 갖다.
    합기도 바로알기 2007. 11. 1. 19:53

    다케다 소가꾸 검술에 더 관심을 갖다. 

     

    다케다 소가꾸!  무술가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나라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한 신문사에서 다케다 소가꾸에 대한 그림이 연재되고 있는데 꼭 60년대 광복절만 되면 나오는 삼류영화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석연치 않다. 다케다 소가꾸! 그를 좀더 자세히 알기위한 사실들을 밝혀내고자 한다.


    일본 역사에서 에도시대에서 메이지 시대에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전쟁이 있었는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세력과 옛것을 지키자는 세력간에 싸움이었다. 이때 많은 무사들이 옛 전통을 지키는 쪽에 편을 들었다. 이시기에 다케다 소가꾸가 살고 있었고 사무라이들의 전쟁을 눈으로 직접 지켜보면서 자란 사람이다.


    다케다 소가꾸는 막부로 유명한 아이즈 지방에 후쿠시마현에 무사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전통적으로 유술을 수련하고 있었으나 그는 유술에는 관심이 없고 검술쪽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런 연유로 인해 그 시대 가장 유명한 검술가인 사카기바라 겐기치 선생의 우치데시(내제자)가 되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사카기바라 겐기치는 직키신 가케류 검술의 종가이다. 이때 다케다의 나이가 20대 전이었다.


    큐슈쪽에 정치가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 무사들을 모으고 있었다. 큐슈쪽은 지켄류 검술이 그 당시 크게 유명했다. 다케다는 마음으로 지지하던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가기위해서 스승인 사카기바라 겐기치 선생에게 보내 줄 것을 허락 받으려 했으나 완강히 반대하였다. 다케다는 스승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사이고 다카모리쪽에 합류하기위해서 길을 떠나 오사카로 가게된다.


    그곳에서 잠시 또 다른 검술을 수련하게 되었고 그때도 큐슈로 가려고 배를 탔는데 사카기바라 겐기치 선생의 뜻을 알고 있던 검술선생이 경찰관들과 함께와서 배에서 끌어내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에 큐슈로 갔을때는 사이고 다카모리씨는 이미 전쟁에서 죽은 후였다.


    큐슈로간 다케다는 그곳에서 검술도장을 오픈하려 했으나 지겐류 검술이 유명하였던 그곳에서 뜻을 접게 된다. 이시기가 일본역사에서 에도시대가 끝나고 메이지시대로 접어든 시기이다. 이때에 다케다 소가꾸는 검술 쪽보다는 유술의 중요함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케다는 혼슈에 있는 경찰서에서 유술을 지도하였는데, 같은 경찰서에서 검술을 지도하던 시모에 슈타로 선생이 보게되는데 체구가 조그마한 사람이 상대의 손목을 잡고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신비한 모습에 반해 그의 제자가 되어 수련을 하였다. 시모에 슈타로 선생은 그당시 북진일도류 검술의 일인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메이지 시대로 바뀌면서 전쟁이 끝나자 많은 사무라이들이 일거리를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격게되고 그중에는 거리의 불량배로 전락하기도 하였는데 그 수가 많았다고 한다. 북해도에 개발 붐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였는데  북해도에도 불량배들의 행패가 심했고 그런 걱정을 덜기위해 신문사에서 시에 건의하여 다케다 소가꾸를 초청하게 되었고 그의 방문이 북해도 신문에 크게 보도됨으로 인해서 다케다 소가꾸는 유명인이 되게 된다. 이후에 북해도 개발단장으로 오게 된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신문기자인 요시다 고타로(극진공수도 최영의 총재에게 대동류를 가르친 선생)의 추천으로 다케다 소가꾸를 만나서 대동류를 배우게 되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