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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기도 명칭에 대한 이해
    합기도 바로알기 2009. 6. 17. 18:07

     합기도 명칭에 대한 이해


      합기도(合氣道)라는 명칭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합기도(국제명:Hapkido)와 일본의 합기도(국제명:Aikido)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두 가지를 비교 분석해 보는 것으로서 합기도 명칭에 대한 진실을 판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현대 무도인 합기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고대의 무술로 대동류유술(大東流柔術)이 있습니다. 그 대동류유술은 다케다 소가꾸(武田怱角,1859–1943)라는 사람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다케다 소가꾸를 말할 때는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의 부흥의 조라고 불려집니다. 대동류유술이란 명칭이 대동류합기유술로 변경된 것은 일본 신도(神道)계의 신흥종교 오모토교(大本敎)2대 교주인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郞,1871-1948) 앞에서 다케다 소가꾸가 대동류유술을 시범하자 그것을 지켜본 오니사부로가 합기(合氣)라는 말을 언급한데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대동류합기유술은 이후 여러 선생에게 전해졌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유명세를 탄 사람이 바로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1883–1969)입니다.


      우에시바는 1940년대에 이미 합기도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2년에 정부  기관인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에서 무도의 새로운 명칭으로 정식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대동류합기유술의 지파(支派)가 아니라, 대동류유술을 바탕으로 하는 체계화된 새로운 무도인 합기도를 창시한 사람이 바로 우에시바 모리헤이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한편 한국의 합기도는 일본에서 대동류유술을 어느 정도 수련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故 덕암 최용술 옹(1904-1986)에 의해서 합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최용술 옹은 1948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서복섭 씨에게 처음 그의 무술을 가르쳤으며, 그는 자신의 무술을 유술(柔術) 또는 야와라(柔)라고 칭하였다가, 이후 유권술(柔拳術), 합기유권술(合氣柔拳術) 등으로 부르다가 마지막으로 합기도라고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무예신문에 한국 합기도의 원로 한분이 연재한 글에서, 한 제자가 미군부대에서 일본 합기도 책인 아이키도 책을 가져와서 최용술 선생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물어보자 ‘그렇다’고 하였는데 그때부터 ‘합기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지한재 씨는 합기도라는 명칭에 대하여, 최용술 옹은 그저 야와라에 기초한 기술만을 가르쳤으며 여기에 발차기 기술과 무기술을 더하여 합기도라 처음으로 칭하였다고 미국 인사이드 태권도 1992년 2월호의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자신을 합기도 창시자라고 소개하고 있고, 최용술 옹을 마지막까지 모시고 있었던 김정윤 씨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복섭 씨는 1986년 태권도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합기유권술이라는 이름을 줄여 합기도로 할 것을 최용술 옹과 협의하였다며 합기도라는 명칭은 자신이 지한재 씨보다 먼저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최초의 한국 합기도 관련 교본을 저술한 김정윤 씨는 태견을 소개하는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라는 책에서 ‘덕암(최용술) 선생은 합기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덕암 선생의 초기 제자들이 도장을 개설할 때 합기도의 이름을 빌려 쓴 것뿐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덕암 선생은 자신의 무술 이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합기도 도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합기도’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합기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무술은 그리 오래된 무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옛날이야기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뿌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의도적인 기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참고로 최용술 선생은 북해도에서 신문기자이자 그 또한 대동류유술의 수련자였던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郎,1883–1966)라는 사람의 집에서 일하는 집사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설입니다. 때문에 다케다 소가꾸의 양자로 있었다는 것은 대표적인 거짓에 속합니다.

      최용술 선생의 수련 사실 및 그 정도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에서는 수료증과 같은 ‘목록’이라는 증명서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초전, 오의, 면허 등이 있는데 그 당시 수련했던 한국 사람이 몇 명 기록되어 있었지만 최용술 옹은 어느 것에서도 명단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우에시바 선생의 경우 개발단장으로 북해도에서 있을 때에 신문기자였던 요시다 씨가 다케다 소가꾸 선생을 북해도에 초청을 해서 북해도로 오게 되었고 그 북해도에서 친분이 있던 요시다 씨에게 부탁해서 다케다 소가꾸를 소개받아 수련을 시작했다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에시바가 당시 15세 정도 소년인 최용술 옹에게 다가와 다케다 소가꾸 선생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릅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한국의 합기도는 발차기를 주류로 하여 태권도의 아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태권도와 비슷한 점이 많으며 여러 가지 무술이 종합된 무술이 되지만 일본의 합기도는 대동류합기유술 본연의 기술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그 기본 바탕을 검술의 움직임에 두어 발차기가 없으며, 공격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바탕위에 더욱 부드러운 무술로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볼 때, ‘합기도’라는 이름은 원래 일본의 우에시바 선생에 의해서 시작된 무도를 지칭하는 것이며, 한국의 합기도는 최용술 옹의 제자가 그 명칭을 도용하여 종합무술로서 정립한, 본래의 합기도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제 국제합기도연맹(IAF)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대한합기도회의 출범으로 인해 합기도를 선택할 수 있는 일반인들의 기준이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명칭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은 앞으로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여 집니다. 합기도 본래의 의미인 상생과 화합을 통해 한국무도의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데 합기도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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