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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합기도 역사는 다시 쓰여 지고 있다.
    합기도 바로알기 2010. 4. 28. 18:56

    한국의 합기도 역사는 다시 쓰여 지고 있다.


       북진일도류에서 단(段)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이전에 일본의 고류무술들은 대부분 ‘모쿠로구’라고 하는 기본적인 기술을 마스터했다는 ‘목록’ 증명서를 주고 지도를 해도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멘쿄’라는 면허 증명서를 수여하는게 일반적입니다. 목록을 세분화하여 초전, 중전, 대목록이라는 것도 있는데, 대동류합기유술도 이와 같은 것이고 종가가 있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을 어느정도 배웠는지 확인할 수 없는 최용술씨에 의해서 한국에 합기도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합기도의 역사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워서 자격을 소지하고 있다면 대동류합기유술로 보급이 되어야 했습니다. 처음 양조장에 간판을 걸었을 때 명칭이 ‘대한합기유권술도장’ 이었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 멘쿄(면허)를 받았다고 말하는 분이 왜 다른 간판을 걸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한국합기도’가 대동류합기유술과 같은가? 라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대답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케다 소가꾸 선생이 며칠씩 가졌던 대동류합기유술 강습회에 최용술씨가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거짓 정보들도 많습니다만 가장 눈에 띄는 거짓말은 다케다 소가꾸 선생이 북해도에서 사망했다는 것과 사망당시 최용술씨가 다케다 소가꾸 선생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케다 소가꾸 선생이 숨을 거두며 "대동류는 너희 나라것이니 가지고 가거라!" 했다는 것은 대표적인 거짓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다케다 소가꾸 선생은 북해도가 아닌 바다건너 아오모리에서 사망했고 그 옆을 아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동류합기유술로 알려졌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계보를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결국 당랑권처럼 정확한 기술적 계보를 가진 사람에게 밀려날 것입니다. 해결책은 이미테이션으로 남느니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처음 대동류합기유술이 다른 이름으로 사용된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지기도 하지만 추측일뿐입니다.    

     

      한국에서 합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합기도가 신비의 무술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대동류 유술을 배운 최용술 선생의 제자가 발차기를 도입해서 합기도라고 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1950년대 후반에 알려지게된 한국의 합기도는 최용술 선생이 일본에서 배웠고 또 가르치고자 했던 대동류합기유술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합기도는 최용술씨에 의해 처음 전해진 대동류합기유술과는 전혀 다른 무술로서 일본의 합기도 명칭을 도용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합기도는 2003년 8월 일본에 있는 세계본부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을 때까지 몇몇 소수 사람들에 의해 깊이 없이 약간씩 전해지다가 정식 승인을 받은 2003년 8월에 와서야 정확하게 그 깊이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합기도 역사는 이제 다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합기도는 창시자가 있는 무술이며 한국 최초로 합기도의 계보를 창시자와 정확히 연결 지으며 한국 합기도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기술하고 있습니다.


      세계본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대한합기도회가 합기도의 철학적, 기술적 완벽을 추구하며 발전을 꾀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대한합기도회는 한국에 합기도를 정확하게 열고 있으며 2008년 10월에 국제조직으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단체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합기도는 이제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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