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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정신
    과거스토리 2010. 8. 17. 23:21

    18년 전쯤에 일어난 실제 이야기이다.

    오래전부터 존경해오던 분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부도가 났다. 전국에 지점으로 있던 사장들이 모두 본사로 달려와서 회사를 점령하고 데모를 하였다. 회사가 난리법석이 난 것이다. 

     

      나는 근 한 달하고도 보름동안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보디가드 영화에서 보듯 그림자 경호를 했다. 처음에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남의 힘을 빌려볼까 생각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중간보스로 있던 한 조직배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전국 각 지역의 오야들로 200여명을 동원하는 조건으로 3억을 요구하였다. 그 정도 자금은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회장은 그런 힘에 의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경영을 잘 못해서 일어난 일인데, 폭력배를 동원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그런 마음은 단호했다. 결국 나는 영화‘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가 혼자서 수많은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을 연상하며 그의 살아있는 정신을 본 받아야만 했다. 남의 약점을 잡아서 돈이나 갈취하는 건달들 천명보다 살아있는 정신을 가진 영화주인공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형님처럼 존경해 왔던 대표의 눈에서 나는, 진정으로 나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곤 다음날 수많은 채권자들 사이로 대표 옆에 팔짱을 끼듯 바짝 붙어서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회사를 아수라장을 만들었던 채권자들은 당당하게 나서서 해결의 의지를 보이는 회장의 걸음걸이 앞에 모두가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면서 사실 나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시청 앞에서 을지로 쪽으로 가는 꺽어지는 도로에서 경호를 위해 회장의 차를 뒤 따르고 있을 때 새치기하듯 밀고 들어오는 고급승용차를 탱크처럼 돌진하며 밀쳐내면서 갔던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임꺽정(가명)을 자처하며 자신의 돈을 달라는 건설업자는 사무실에서 술판을 펼쳐놓고 나와 함께 있던 제자를 두들겨 패기도 했다. 큰 싸움으로 번질 뻔했던 일이었지만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니 때리면 맞고, 절대 싸우지 말아 달라”는 회장의 부탁으로 우리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경호가 영화에서 보듯 멋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부도가 나고 그 해결을 위해서 회사에 들어가는데 회장이 나에게 동행해 달라는 요구를 해 왔을 때 나는 잘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행하기 하루 전날 회사에 갔을 때 9층이나 되는 건물 전체를 채권단이 유치권을 행사하듯 장악했다. 손에는 각기목과 쇠파이프가 들려있었고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사원들은 이미 건물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그렇게 거칠고 무섭게 나왔던 채권자들이 회사 대표가 나타나자 이전에 달려들 것만 같았던 그들의 행동이 차분하게 바뀌는 것을 보았다. 회장에게 모두가 나서서 각자의 소리를 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채권자들은 대표단을 정하고 회장과 대면하며 해결방안을 찾고 있었다. 한달 보름동안의 초긴장 상태에서 나는 살아있는 정신이 무엇인지 세상을 배웠다.

     

    (예쁜 웨딩드레스가 여자를 무섭도록 용기있게 바꿔놓는다.) 

     23년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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