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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술유파의 발생과 자연신
    品位 2010. 9. 15. 16:52

      <가토리 신궁>

     

        일본의 종교를 신도라고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의미와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적은 것 같다. 일본의 종교를 살펴보면 고대에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깊은 산에 산신당이 있는 것처럼 많은 자연신이 있었으며 사당을 만들 듯 신사를 지었다. 그때의 모든 신은 자연신 중심이었다. 일본 종교는 고대 나라시대부터 시작해서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무로마치, 오다 노부나가의 전국시대를 거쳐 에도시대까지는 아마 우리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천황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무라이는 가마쿠라시대 이전까지는 천황과 귀족을 경호하는 군인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다. 천황은 문인으로 귀족이었으며 신에게 의식을 바치는 제사장이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 사무라이였던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사무라이가 정권을 잡게 된다. 이때부터 천황은 막부의 아래로 그 지위가 내려간다.

     

      가마쿠라 이전까지 사무라이는 싸우는 것만 했고 지위는 귀족보다 낮아서 천황 앞에서는 걷지도 못했다. 미나모토는 화살로 3명이나 관통했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무사였다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에 군대가 결성되고 전국시대에 들어서 일본에는 검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때 일본의 종교는 앞서 이야기한 자연신을 생각하는 자연신도(自然神道)가 다였다.

     

      일본의 검술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있었던 전국시대 때 가장 많은 기술적 발전이 있었다. 이 시기에 일본 최초의 검술인 가토리신토류가 탄생한다. 가토리신토류 검술은 자연신을 모셔놓은 가토리신궁(香取神宮)을 대표하는 검술유파가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이후 일본은 근 300년 동안 평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각종 검술유파가 생기기 시작했다. 에도시대 30여개의 유파가 나중에는 600개 이상으로 검술유파가 늘어나게 된다. 메이지때 와서 천황이 정권을 다시 잡고 나서 자연신도(自然神道)는 국가신도(國家神道)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때부터 자연신이 아닌 천황(天皇)을 신으로 바꾸고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신도는 천황을 신(神)으로 섬기게 하던 메이지시대 이후의 신사를 기억하는 것으로서 무사들이 가졌던 원래의 자연신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신도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권력가진 자들에 의해서 천황을 신으로 만들어 국민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가슴 아픈 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국가신도는 2차 세계대전 종전후 다시 자연신도로 제자리를 찾았지만 이미 상처입은 사람들의 기억에는 좋은 것이 없다.  또한 샤머니즘을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에 신도는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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